"어? 올림픽 벌써 끝났어?"
최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 이야기입니다. 맞습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국가적 축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도 조용히 시작해 적막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예전처럼 온 가족이 거실 TV 앞에 모여 밤잠을 설치며 목청껏 응원하던 뜨거운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죠. 스포츠 팬의 한 사람으로서, 올림픽 특유의 가슴 뛰는 설렘이 실종된 이 낯선 풍경에 헛헛함을 넘어 짙은 짜증마저 밀려왔습니다.
7,000억 원의 베팅, 부메랑이 된 독점 중계
처음에는 그저 '이번 동계올림픽 한 번' 겪고 지나갈 해프닝인 줄 알았습니다. 이번 대회 독점 중계권을 거머쥔 JTBC의 운영 방식을 꼬집는 비판 글을 썼을 때만 해도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진짜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는, 이 차가운 올림픽 분위기가 앞으로 마주할 기나긴 터널의 입구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시계를 2019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당시 JTBC는 이번 밀라노 올림픽을 신호탄으로 2026년 북중미 월드컵, 2028년 하계 올림픽, 2030년 월드컵, 그리고 2032년 브리즈번 하계올림픽까지 무려 8년 치 초대형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의 중계권을 싹쓸이했습니다. 이 엄청난 독점권을 위해 쏟아부은 금액만 무려 7,000억 원. 일개 방송사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역대급 도박을 감행한 셈입니다.
결국 이 거대한 베팅의 청구서가 보편적 시청권의 축소라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겪은 텅 빈 것 같은 아쉬움이 앞으로 8년 내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짐작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악몽으로 다가옵니다.

미디어의 씁쓸한 민낯, JTBC'패럴림픽 패싱' 논란
거대 미디어가 감추고 있던 가장 냉혹한 민낯은 '패럴림픽 패싱' 논란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JTBC는 시청률과 광고 수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돈 되는' 올림픽 본선은 기를 쓰고 독점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덜한 패럴림픽 중계는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오로지 자본의 논리에 따라 달콤한 과실만 취하고 거대 미디어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시청권은 내팽개친 셈입니다.
쏟아지는 비판에 그들은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주관 기구가 다르고, 애초에 중계권 계약 권리 범위가 달랐다"는 기계적인 변명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부랴부랴 취재진을 파견해 뉴스로라도 소식을 전하겠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드러난 본질을 가릴 순 없었습니다. 방송사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소외된 곳을 향한 시선은, 철저히 자본의 계산기 앞에서 가차 없이 내동댕이쳐졌으니까요.
다행히 KBS가 구원투수처럼 등장해 그 빈자리를 채워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진정성 있는 약자 배려라기보다는, 타사의 위기를 틈타 긍정적인 여론과 이미지를 가져오려는 다분히 계산된 의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순수해야 할 스포츠 중계마저 철저히 자본의 득실과 이미지 메이킹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한걸까?
그렇다면 여기서 필연적인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JTBC는 도대체 어떤 계산을 가지고 이 막대한 7,000억 원의 리스크를 홀로 짊어진 것일까요? 상황을 뜯어보면 결론은 명확해집니다. 그들은 애초에 이 거대한 이벤트들을 혼자서 모두 방송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동산 시장의 생리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자금력이 부족한 투자자가 빚을 내어 상권의 핵심인 거대한 상가 건물을 통째로 매입합니다. 자신이 그 건물을 다 쓸 목적이 아닙니다. 건물을 층별로 쪼개어 다른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재분양함으로써 막대한 단기 시세 차익을 남기려는 속셈인 것이죠. JTBC의 당초 계획 역시 이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글로벌 스포츠 중계권을 독점한 뒤, 이를 다시 국내 지상파 3사(KBS, MBC, SBS)에 비싸게 되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남기겠다는 전형적인 '기획 부동산' 식의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겁니다.
과거 대한민국의 지상파 3사는 '코리아 풀(Korea Pool)'이라는 일종의 공동 구매 협의체를 구성해 글로벌 기구들과 협상에 임해왔습니다. 이는 방송사들 간의 과도한 출혈 경쟁을 막고 시청권을 보호하기 위한 암묵적인 방어막이었습니다. 그런데 JTBC가 거대 자본을 무기로 판에 난입하면서 시장 질서가 붕괴되었고, 결과적으로 중계권료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해 버린 것입니다. JTBC의 셈법은 오만할 정도로 단순했을 겁니다.
"우리가 독점 물량을 쥐고 있으니,
너희 지상파들도 결국 우리가 부르는 비싼 값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시장은 JTBC의 얄팍한 통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재판매 협상 테이블에 앉은 지상파 3사의 입장은 단호하고 냉정했습니다. 네가 무리해서 올려놓은 거품 낀 가격을 왜 우리가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떠안아야 하느냐는 본질적인 반발이었습니다. 충분이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솔직히 지상파의 현실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유튜브와 글로벌 OTT 플랫폼의 맹렬한 공세에 밀려 전통적인 TV 광고 수익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미 만성적인 적자 늪에 빠져 있습니다. 수백억 원의 추가 적자를 확정 지으면서까지 국민적 관심도마저 예전 같지 않은 스포츠 중계권을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사 올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업계에 분석되는 바로는, KBS는 두 개 채널을 모두 합쳐 100억 원 남짓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했고, MBC는 애초에 60억 원 선을 불렀다가 지금은 금액을 더 낮추며 장기적인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양측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로 인해 협상은 꽁꽁 얼어붙어 완전히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입니다.
이 치열한 '치킨 게임'의 최종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현재 상황을 짚어보면 지상파 3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시간'과 '배짱'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습니다. 지상파가 끝까지 버티게 된다면, 결국 7,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매몰 비용과 이자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쪽은 JTBC입니다. 이미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무리하게 단독 중계를 강행했다가 재판매 실패가 가져오는 참담한 재무적 손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고, 눈앞으로 다가온 북중미 월드컵 역시 똑같은 악몽이 재현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대로 타협점 없이 협상이 결렬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초로 국민적 축제인 월드컵과 올림픽 모두를 오직 특정 종편 채널 단 하나에서만 시청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일각에서 JTBC가 현재 심각한 유동성 위기와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JTBC는 다급한 대로 네이버 등 대형 포털과 100억 원대 규모의 디지털 플랫폼 스트리밍 권리 협상을 진행하며 어떻게든 새로운 수익의 돌파구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TV가 안 되면 온라인으로라도 팔아보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아~) 결국 작금의 이 모든 촌극은 특정 방송사의 과도한 독점욕과 시장에 대한 치명적인 오판이 빚어낸 철저한 자업자득입니다. 자본력을 앞세워 경쟁사를 따돌리고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오만이 중계권료의 비정상적인 거품을 만들어냈고, 급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과거의 낡은 '재판매 수익 모델'에만 얽매이다가 스스로 깊게 파놓은 무덤에 빠져버린 격입니다.
마치며
우리는 이 사태를 그저 한 탐욕스러운 방송사의 뼈아픈 투자 실패기 정도로 치부하며 가볍게 냉소하고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7,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놀이 전쟁 속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뼈아픈 피해를 보는 건 결국 화면 너머의 평범한 시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안 된다는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로 패럴림픽 선수들의 숭고한 땀방울은 브라운관에서 강제로 지워졌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스포츠 축제의 즐거움은 자본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거대 자본이 얽힌 이 난장판 속에서, 우리의 당연한 '볼 권리'는 대체 어디로 간걸까요? 중계권을 쥐고 비싸게 팔려고 버티는 JTBC와 적자를 핑계로 뒷짐 진 지상파의 피로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결국 우리는 끊기는 화질을 참아가며 이름 모를 해외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찾아 헤매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게 될까봐 너무나 걱정됩니다. 미디어 자본의 폭주를 제어할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단순히 리모컨으로 누를 TV 채널의 선택권 하나만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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